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영국 요리 (문단 편집) === 오늘날의 발전 === [[파일:lisa-baker-VqTwBiaiSsk-unsplash.jpg]] ▲ 오늘날에도 영국의 많은 레스토랑에서 끊임없이 재해석하는 대표적인 요리인 [[로스트 디너]]. > 세계대전 당시의 식량 배급제가 가져온 끔찍한 시대 이후, 영국인들이 자신들의 요리가 가진 끔찍한 평판을 극복하고 전통적 미식의 뿌리에 대한 자긍심을 되찾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선구자였던 엘리자베스 데이비드(Elizabeth David)[* 영국이 배출한 세계적인 푸드 칼럼니스트. 각국의 전통 요리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는 좋은 요리에 대한 새로운 흥미를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주로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유럽의 향토 요리에 관심을 가졌다. 60년대와 70년대는 다른 국가들의 요리가 주목받던 시기였고, 이국적인 음식들과 식당들이 넘쳐났다. 80년대는 다시 프랑스를 참고하며 [[누벨 퀴진]]이 도래했던 시기였다. > >당시에도 이미 전통적인 영국 요리의 세계를 찾아나섰던 요리사들이 많이 있었지만, 옛 시대의 영국에서 가장 핵심적이었던 요리들은 누벨 퀴진의 까다로운 외형과는 맞지 않았다. 사람들이 예술적으로 장식되었지만 쥐꼬리만했던 요리들에 끝내 질려버릴 때쯤, 드디어 현대 영국 요리가 요식업계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 > 현대 영국 요리(Modern British cuisine)은 옛 요리들의 부활을 의미하지 않는다. 퓨전된 요소들을 통한 재해석, 즉 전통적인 스튜, 로스트, 파이와 푸딩들의 좋은 점들을 가져다가 재창조하는 방식이 자주 사용된다. 육즙 넘치는 양 정강이살과 소고기 로스트, 짭짤한 파이들은 지난날의 요리들의 핵심을 장식했지만, 이제는 창의적인 변화를 거쳐 새로운 황금시대를 맞는다. 한때 우리와 학교 급식의 관행이 망쳐버린 요리들은 새로운 관심을 받고 있다. 여기에는 새 향신료와 허브들, 창의적인 부재료들, 잘 쓰이지 않던 채소들 등의 요소들이 동원된다. 스테이크 앤 키드니 파이, 버블 앤 스퀴크, 랭커셔 핫팟, 스팀드 푸딩과 같은 류의 요리들은 끔찍한 케이터링 업체들과 학교 식당들의 손아귀에서 풀려났고, 대신 영감 넘치고 솜씨좋은 요리사들에 의해 새롭게 재탄생했다. > ------- > - Go Dine에 실린 '[[https://www.godine.co.uk/blog/modern-british-cuisine#|현대 영국 요리 가이드]]' 중. 배급제의 여파는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긴 시간 동안 남아 있었다. 당시에는 전후 복구에 신경을 썼고 [[식민지]]들은 대부분이 점차 독립해 나간 데다 본토는 [[영국병]]까지 겪다 보니 요리는 뒷전이었다. 그렇다보니 외식 요리 역시 인근 서남유럽 요리[* [[프랑스 요리]], [[이탈리아 요리]], [[스페인 요리]], [[포르투갈 요리]], [[그리스 요리]], [[튀르키예 요리]] 등]나 구 식민지들의 요리[* [[인도 요리]], [[파키스탄 요리]], [[방글라데시 요리]], [[네팔 요리]], [[스리랑카 요리]], [[중국 요리|중화 요리]], [[말레이시아 요리]], [[싱가포르 요리]]가 인기를 끌었다. 일단 [[인도 요리]]와 [[파키스탄 요리]]의 경우 [[인도계 영국인]]과 [[파키스탄계 영국인]] 대부분의 본적지인 [[펀자브]], [[구자라트]], [[델리 연방 수도구역|델리]] - [[하리아나]] 지역 등 인도 북부 지역 요리가 인기를 얻었다. [[중국 요리|중화 요리]]의 경우 [[광동 요리]], [[복건 요리]]와 [[싱가포르 요리]]가 주를 이룬다. 이는 영국령 식민지에 널리 퍼져 있던 [[광동인]] 위주의 [[홍콩인]],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의 문화적 배경 때문이다.]가 주를 이루었다. 주요 식당의 셰프들도 외국에서 온 이민자들이었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영국령 홍콩|홍콩]]과 [[싱가포르]] 등.] 그러나 1980년대부터 이들에게 배운 영국 요리사들이 새로 대두되었다. 이 신세대 요리사들은 이전 시대와는 달리 중산층 출신이었고, 도제식 교육이나 대학 교육을 받은 이들은 적었다. 그들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페인]] 셰프들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으나, 지나친 장식성과 부르주아적 형식은 배제한 요리들을 선보였다. 대신 그동안 천대받던 [[북유럽]]과 [[독일]]의 소박한 요리 방식과 [[일본]]의 디자인을 접목했다. 여러 가지 영국 전통 요리들을 발굴하고, 이를 다시 세계 만방의 식재료들과 접목하여 현대화하기 시작한 것도 이들의 공이다. [[분자 요리]]와 같은 실험적 성격이 강한 시도도 계속되었다. [youtube(NWhDUezpjyA?si=YbwKKGjUqdLlg0vv)] > "오래된 영국 요리 조리법들을 연구하면서, 저는 이 끔찍한 시기[* [[배급]]제 이후를 말한다.]가 도래하기 전의 요리들이 생각보다도 더 세련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니까 200년 전으로 돌아가면 요리들이 죄다 묵직하거나 전분으로 떡칠되어 있지는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 당시에는 지금보다도 더 세련된 것들이 많았습니다. 아주 놀라운 일이지요." > -------- > - 영국 셰프 게리 로데스(Gary Rhodes),[* 1960 ~ 2019. 남런던 출신의 요리사. 14세 때 [[암스테르담]]에서 요리 경력을 시작했다. 생전 많은 레스토랑을 영업하면서 현대 영국 요리의 위상 확립에 기여했으며 이 공으로 [[대영제국 훈장]]을 받았다. [[마스터셰프]] 등에 출연한 스타 셰프이기도 했다. 2019년 [[두바이]]에서 사망했다.[[https://www.bbc.co.uk/news/entertainment-arts-50573348]]]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https://amp.scmp.com/magazines/style/leisure/article/2116532/how-modern-british-fare-took-spotlight-fine-dining-scene|#]] 영국 식문화의 초토화된 폐허는, 역설적으로 영국인 셰프들이 제약 없이 자신의 창의성을 마음껏 펼치며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현대 영국의 셰프들은 [[전통]] 요리를 재발견하는 데 큰 관심을 가지고 있기는 하나, 타 국가들처럼 교조적인 전통에 구속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상술한 대로 이민자들의 요리들이 영국의 [[다문화]] 사회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다양성을 더한 것도 영국 요리의 발전을 가속했다. > 현대 영국인들은 전과 같이 새롭고, 특별한 시간과 장소에 기반한다. 활발하게 무역하는 탈제국적 국가에 말이다. 전쟁과 배급, 침체된 경제와 심지어는 계급에 고유의 식문화를 빼앗겼고 요리계에는 늦게 참여했지만, 배고프고 전통에 구애받지 않는데다 이미 문화의 용광로이다. 지난 20년간, 마치 튤립 파동 때처럼 몰아치는 "요리 르네상스"의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 --------- > - 파이넨셜 타임스 [[https://www.ft.com/content/5e718d4e-140f-4991-9dd1-2779d64732c5|#]] 일각에서는 영국 셰프들이 세계 만방의 요리 문화를 도입하는 것을 두고 [[제국주의]]적 문화 침탈이라고 비난하지만, 사실 그 근원은 제국주의라기보다는 현대 영국의 다문화적 [[개방성]]에 있다. 오늘날 영국의 외국 이주민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 식민지 시대가 종결되어 가는 시기에 정착했다. 영국이 이민을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할 때 [[인도계 영국인]], [[파키스탄계 영국인]], [[영국 흑인|아프리카계 영국인]]이 정착한 시기가 1950년대이다. 가령 영국인들의 식탁을 점령하다시피 한 [[인도 요리]]가 영국 내에서 본격적으로 퍼져나간 일차적인 계기는 [[영국 해군]]의 병영식이지만, 보다 직접적인 이유는 1950년대의 인도, 파키스탄 독립과 1970년대 초 [[방글라데시 독립전쟁]]과 [[이디 아민]]의 폭정이었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독립 이후 [[펀자브]], [[구자라트]] 기반의 [[인도계 영국인]], [[파키스탄계 영국인]]들이 정착했고, 이들 커뮤니티 규모의 확장은 [[이디 아민]]의 폭정과 [[동아프리카]]의 정국 혼란 때문이었다. [[벵골인]]들이 파키스탄군의 공격을 피해 대거 런던에 들어오면서 벵골 지역 요리 역시 이 이주민 집단을 중심으로 퍼져나간 것이다. [[중국 요리]] 역시 마찬가지인데, 런던의 첫 중국 식당이 개업한 것은 1908년이었지만 우후죽순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은 [[국공내전]]이 끝나 중국인 [[난민]]들이 [[영국령 홍콩]]을 거쳐 런던으로 대거 들어온 1950년대부터이며 비슷한 시기에 [[해협식민지]]의 독립과 [[말레이시아]]의 [[싱가포르]] 축출로 인해 [[중국계 말레이시아인]]과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이 [[말레이인|선주민]]과의 갈등도 피하고, 당시 [[싱가포르/경제|경제]] 문제[* 지금이야 싱가포르는 선진국이지만 당시에는 [[미얀마]]보다도 더 가난했다. [[리콴유]] 초대 [[싱가포르 총리]]의 공약이 미얀마보다 더 잘 살게 하겠다고 한 것이었다. 물론 리콴유의 정책으로 인해 [[싱가포르/사회|사회]]가 안정화되고 [[영국]], [[미국]] 국적의 [[다국적 기업]]들과 [[영국령 홍콩|홍콩]], [[대만]] [[화교]] 자본의 투자로 인해 지금의 선진국인 싱가포르가 된 것이다.]로 인해 많은 [[화교|중화권 출신 이민자]]들이 몰렸다.[* [[대만인]]들이 [[미국]], [[캐나다]], [[일본]]으로 갔고 나중에 한국이 선진국이 되자 일부가 [[대한민국|한국]]에서 [[화교/대한민국|정착]]한 것과 반대된다. 아무래도 [[홍콩인]]과 [[싱가포르인]] 입장에서는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가 미국, 일본, 한국보다는 더 유사하다.] 비슷한 시기 소위 '[[대영제국]]'이 붕괴하고 식민지 국가들과 영국 본국이 동등한 관계를 구축하였다. 지배국인 영국의 [[영국/문화|문화]]와 피지배자인 식민지 문화 간에 존재하던 위계적 질서는 [[영연방]]의 등장과 함께 무너졌고, 때마침 [[영국인]]들 사이에서도 [[68 혁명]]을 통해 구 식민지 국가들을 동등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떠오르며 그들의 문화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다. 식민제국 시대의 권위적인 영국인들과 외국인 혐오적인 이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타국 문화를 편협하게 바라보면서 그 영향을 배격하였으나 변화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이런 배경 속에서 1990년대부터 떠오르기 시작한 [[고든 램지]], [[제이미 올리버]], 나이젤라 로슨, 제이슨 애서턴, 그리고 헤스턴 블루멘탈과 같은 영국의 스타 셰프들은 다시 각종 방송과 요리책, 그리고 사회운동을 통해 요리에 대한 [[영국인]]들의 관점과 식문화를 개선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공영방송 [[BBC]] 역시 [[https://www.bbcgoodfood.com/|BBC Good Food]]라는 미디어 브랜드를 1980년대 후반부터 신설하여 보다 좋은 레시피를 보급하는 데 힘쓰고 있다. 이 노력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효과를 보고 있으며, 한때 거의 죽어버리다시피 했던 영국의 요리와 식문화는 이렇게 서서히 살아나고 있다. 이미 [[파인 다이닝]] 음식점들에서는 현대 영국 요리가 중요한 위치로 떠오른 상태다. 물론 일반적인 영국 시민들의 식탁에까지 이 발전상이 완전히 닿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그럼에도 그 변화는 분명 꾸준히 영국의 전반적인 식문화를 개선 중이다.[[https://www.greycoatlumleys.co.uk/blog/2016/09/the-rise-of-british-cuisine-from-fish-and-chips-to-gourmet?source=google.com|#]]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